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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피에르 드 롱사르, 연애시집

by INSPIRAL 2023. 8. 28.

피에르 드 롱사르는 '프랑스 시인의 왕자'로 불리는 르네상스 시문학의 주요 인물입니다. 우아한 용모, 타고난 언변에 운동 능력까지 타고난 인재였으나 열여섯 살 때 고열로 한쪽 귀가 멀게 되며 스무 살이 넘는 나이에 궁정 대신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사후 얼마간은 명성이 사그라 들었으나 19세기 이후 위대한 시인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피에르 드 롱사르

 

목차

     

    피에르 드 롱사르, 연애시집

     

    피에르 드 롱사르의 연애시집은 무도회에서 만난 미소녀 카상드르를 노래한 페트라르카풍 사랑 노래입니다.

     

    페트라르카풍이란 14세기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가 <칸초니에레>에 선보인 연애 형태와 여성의 아름다움을 자연의 갖가지 사물에 빗대어 고결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등의 시적 표현 등을 말하는데, 부드럽고 내향적인 성향의 이 필법은 유럽 연애 시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플레야드파로 불리는 일군의 시인들은 고전을 깊게 공부하면서도 자국의 언어를 사용하여 걸작을 써내고자 분투했는데 그 중심에는 피에르 드 롱사르가 있었습니다.

     

    롱사르의 <연애시집>은 페트라르카나 신플라톤주의의 플라토닉 한 연애관을 이어받고 고전적인 시 형식과 문체를 프랑스어로 되살린 근대 서정시 최초의 걸작입니다.

     

    롱사르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꽃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의 정령 드리아드 등 자연에 비유하여 이상화합니다. 또한 페트라르카를 따라 사랑의 아픔과 고통을 모순된 어법을 통해 표현할 때도 프랑스어만의 감각적이고 유미한 결을 한껏 살려냅니다.

     

     

    피에르 드 롱사르,  시인의 왕자

     

    피에르 드 롱사르는 몽테뉴와 함께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그의 문학적 성공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롱사르는 그에게 상당한 수입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수도원과 후원자를 찾는데에 노력을 쏟았고  끝끝내 왕의 지원을 받아 시인이자 국왕의 군목이라는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왕을 위해 교훈적인 시와 연설을 썼고 종교 전쟁이 발발하자 가톨릭 교회의 편에서 시를 썼습니다. 궁정생활을 벗어난 롱사르는 정원 가꾸기에 전념하며 자연과 역사 등에 관련된 시를 썼으나 샤를 9세가 사망하자 철학자로서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롱사르를 거의 좋아하지 않던 앙리 3세가 즉위하자 은퇴에 가까운 생활을 했지만 지병인 통풍을 앓으면서도 그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름난 미녀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그는 50대의 나이에도 약혼자를 잃은 20세의 엘렌느를 위로하다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나이차가 큰 탓에 그의 구애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롱사르는 자신의 사랑을 거절하면 늙어서 후회할 것이라는 내용의 <엘렌느를 위한 소네트>를 출판했는데, 이 작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플라토닉 한 사랑을 기념하는 성숙한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애창됩니다.

     

    롱사르는 평생 동안 자연과 사랑, 철학, 정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시집들을 간행하였습니다. 그는 신조어를 창조하고 프랑스어 문학에 대중적인 언어를 도입하여 시 분야를 널리 확장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매너리즘과 그의 불규칙한 작품으로 인해 고전시대 내내 기피 대상이 되고, 낭만파, 파르나소스파, 상징파 시대가 되어서야 그의 명성이 다시 한번 높이 평가 됩니다.